지혜를 열어주는 금강스님의 법문 1 

글로 보는 법문

신문컬럼날마다 좋은 날

능우
2023-12-23
조회수 160

2021.11.13 03:00 

금강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가을비 지나간 숲길에 낙엽이 수북하다. 푹신한 감촉을 느끼며 한발 한발 기분 좋게 걷는다. 나뭇가지에 매달려 흔들리는 단풍잎을 보면서 ‘예쁘다, 예쁘다’ 몇 번이고 웅얼거렸다. 문득 마음 깊은 곳에서 ‘체로금풍(體露金風)’이라는 울림이 떠오른다. 공부하는 이라면 가을에 한 번쯤 들어보았을, 책상 앞에 놓고 새겨볼 좋은 글귀이다.


스승과 제자가 가을 숲길을 걷다가 묻고 답한다. “나무가 마르고 잎이 떨어질 땐 어찌합니까?” “가을바람에 온몸이 드러났다(體露金風).” 숲길에서 옛 선사들의 문답을 떠올리는 건 수행자들에겐 자연스러운 일이다. 언제나 마음을 근본 뿌리에 두기 때문이다. 이는 현상을 보면서 과거와 비교하거나 미래를 기대하지 않고 ‘지금 여기’에서 마음이 살아있음을 말한다.


지금은 앙상한 가지만 남았지만 지난봄에는 고귀한 향이 꽃망울에서 나는 게 신기하기만 했다. 흐드러진 연분홍빛 왕벚꽃은 얼마나 눈을 환히 빛나게 했던가! 세찬 비바람에 꽃잎이 후드득 한꺼번에 떨어진 적도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연초록 어린 잎들이 하늘 가득 메워졌을 때는 또 얼마나 신비로웠는지. 눈부신 아침 햇살을 받으며 거닐던 언덕길에서 보석처럼 새까맣게 달린 버찌를 발견하곤 새들처럼 재잘거리며 한 알 한 알의 달콤함에 취했다. 한여름의 매미 소리와 어울려 시원한 그늘에 앉아 땀을 식히며 쉬었던 기억도 새록새록 떠오른다. 벚나무 잎은 크고 두껍다. 그래서인지 가을바람이 불면 가장 먼저 물들고 서둘러 떨어져 뒹군다. 더 붙잡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벚꽃 지듯 벚나무 잎도 부리나케 지고 만다.


나뭇가지 끝에 마음을 두면 그 변화에 기뻐하고 실망하는 마음이 교차하기 마련이다. 우리의 기억은 좋은 기억보다 싫은 기억을 70% 정도로 많이 한다고 한다. 아름답고 행복하다는 마음보다 허망하고 아쉽고 두렵다는 마음을 더 자주 떠올린다는 것이다. 삶에서도 다르지 않다. 태어나 어른이 되기까지의 수많은 만남과 일들, 새해 첫날부터 오늘까지 시공간에서의 숱한 만남들이 그렇다. 아니 오늘 아침부터 저녁까지만 살펴봐도 행복함과 아쉽고 허망한 마음들이 수도 없이 교차했다. 결국에는 하루의, 계절의, 생의 마지막에는 허망함만이 남는다. 바로 이때, 제자의 “잎이 다 진 뒤에는 어떠한가?”란 질문이 던져진 것이다. 스승의 답은 멋지다. “든든한 몸체와 뿌리가 있지 않느냐! 번뇌 없는 평화로운 마음, 붙잡지 않는 자유로운 마음, 생생하게 살아있는 행복한 마음이 네가 묻는 지금 여기 있지 않느냐!”라는.


나무를 보더라도 단단한 뿌리와 원기둥을 생각하면서 계절 따라 변화를 본다면 착각하거나 허망한 생각에 휘둘리지 않는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날마다 활발발하고, 신비롭고, 즐겁고, 행복한 날이 되는 것이다.


앞의 문답에서 스승은 운문 스님이다. 복잡한 질문을 짧게 답하기로 유명한 분이다. 운문 스님이 어느 날 500여 제자들에게 법문을 했다. “과거는 묻지 않겠다. 오늘 이후의 삶에 대해 말해보라!” 대답이 없자 스님은 “날마다 날마다 좋은 날(日日是好日)이다”라고 스스로 답했다. 어제를 떠나 오늘을 사는 사람은 언제나 새롭다.


모든 것은 변한다. 생멸에서 자유로운 것은 없다. 사람의 몸은 60조개의 세포로 이루어졌으며 1초에 100만개의 세포가 생멸한다고 한다. 간세포나 혈액세포는 150일이면 완전히 바뀌고, 피부세포는 4주 정도면 모두 교체되며, 허파세포는 1년이면 모두 교체된다는 것이다. 몸이 소멸하는 데에 마음을 두면 늘 걱정스럽고, 불안하고, 아쉬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보고 듣는 근본 성품은 언제나 그대로다. 마치 푸른 하늘처럼 온갖 변화를 품지만 애써 붙잡지 않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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