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를 열어주는 금강스님의 법문 1 

글로 보는 법문

신문컬럼불을 끄면 밝아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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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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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016 10 25 금강

 

산사의 가을밤은 제법 쌀쌀하다. 두꺼운 옷을 꺼내 입고는 밤 숲길을 걷는다. 이번 가을은 비가 많이 내리고 흐린 날이 많아 별빛을 만나기가 어려웠다. 모처럼 맑은 날의 밤을 기다렸다. 나무들은 벌써 겨울 준비를 시작하고 있었다. 다음 세대를 위한 열매를 땅에 내어놓고, 애써 봄부터 꺼내어 단단하게 키워온 나뭇잎들과도 붉은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밝게 빛나는 별빛과 청명함이 깃든 가을밤 숲길의 적요 속으로 걸어 들어가니 참 좋다.

마당에 나가 하늘을 보는데 별빛이 흐리다. 몇 해 전 숭례문이 방화로 스러진 후에 국가지정문화재의 건축물은 방범 방화 시설을 단단히 보완했다. 마당 곳곳에 방범등을 켜 놓으니 절집에도 밤이 환하다. 일본의 호시노무라의 별빛이 가장 아름답다고 노래하던 지인이 미황사의 가을 별빛을 보고는 그보다 훨씬 별들이 많다며 좋아하던 기억이 떠올라 방범등 불빛이 자꾸 거슬린다.

어느새 깜깜한 밤 숲길로 접어들었다. 불빛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옛 스님들의 사리탑을 모셔 둔 부도전까지 왔다. 열반의 적막함 위에 쏟아지는 별빛은, 번뇌가 사라진 입멸(入滅) 속에 드러나 반짝반짝 빛나는 지혜와 같다. 어둠이 깊을수록, 날씨가 차가울수록 별빛은 더 영롱하게 빛나는 법이다.

사람들의 마음도 오히려 답답함 속에서 비약하는 길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문득 우리는 불빛을 너무 많이 켜놓고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고 싶은 일도 많고 해야 될 일도 많아서 수많은 불을 켜놓으나, 기실 그것은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진정한 나의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 모르고 미망 속에 두서없이 켜놓은 것들은 아닌지 모르겠다.

수많은 정보들도 그렇다. 얼마 전 지역신문을 만드는 이와 대화를 나누다가 미국의 워싱턴 외곽의 한 흑인 신문사를 방문하고 받은 감동을 전해 들었다. 신문 발행인은 ‘우리 신문은 범죄 기사를 싣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흑인은 주로 스포츠를 잘할 경우와 범죄사건이 벌어졌을 때 백인 신문에 등장한다. 범죄 사건이 터지면 백인 신문은 유난히 흑인의 피의 사실을 부각해서 흑인들을 범죄 집단처럼 왜곡하기도 한다. 우리는 사회를 얼룩지게 하는 범죄 사건보다 아름답고 진취적으로 살아가려는 흑인 사회의 모습에 보도의 초점을 맞춘다.’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지난달 8일 동안의 수행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의 소감을 잠시 소개한다.

“머릿속의 생각을 멈추고 싶었습니다. 끊임없이 떠오르는 과거 일에 대한 후회, 누군가를 향한 원망과 분노,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섣부른 판단과 고민, 미래에 대한 추측과 계획, 그로 인한 불안. 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이 일들이 당연한 것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어나지 않은 일에 에너지를 쏟으며 감정을 소모하고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들을 몇십 번씩 되뇌이며 후회하고 원망하는 것이 과연 당연한 일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고 그때부터 생각을 멈추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공동 화장실, 공동 욕실, 여름철 벌레들. 생각해보면 모두 저 자신이 너무나도 싫어하는 것들인데 숨을 들이쉬면 미소가 지어질 만큼 정겹게 느껴졌습니다. 자하루를 걸으면 나는 삐거덕거리는 마루 소리, 마당의 흙냄새, 맑은 물소리. 마음이 편안해서인지 좋은 것들이 더 많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우리들의 본래 마음은 별빛보다 반짝이고, 봄 햇살보다도 포근하고 넉넉하다. 분별하는 마음을 내어 수많은 것들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무한 경쟁의 시대를 우리 스스로 만들어 놓았다. 언제 누가 만든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보면서 들으면서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깜깜한 밤에 잠을 자면서도 쉽게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는 것은 수많은 생각의 불을 켜놓고 있어서다.

욕심, 화내는 마음과 고집부리는 생각의 불을 끄는 일부터 시작하자. 그러면 청정하고 고요하며 지혜의 불이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어느 선사의 글에서 읽은 대목이다.

“마음으로 말하면 마음에는 아무것도 잘못된 것이 없다. 마음은 본래 깨끗하고, 마음은 이미 고요하다. 요즘 들어 마음이 고요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마음이 감정을 따라갔기 때문이다.” 본래 마음의 빛을 만나고자 한다면 그렇게 잠시 멈춰야 한다.

절 마당의 가로등을 꺼야 별빛이 나타나듯 여기저기 켜놓은 나의 불빛들을 잠시라도 꺼보자. 잠자기 전 이불 속에서 10분이라도 욕심의 불, 비교하는 마음의 불을 끄고 호흡을 가다듬고 숨 쉬고 있는 생생한 자신을 느껴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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