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에세이 2016. 12.6 금강스님
서울에서 시작된 촛불집회가 이제는 땅끝마을 해남까지도 이어져 주말마다 촛불을 든 지역민들이 광장에 모이고 있다.
한 등불이 능히 천년의 어둠을 없애고, 한 지혜가 능히 만년의 어리석음을 없앤다(一燈能除千年暗일등능제천년암 一智能滅萬年愚일지능멸만년우)라는 『육조단경』(六祖壇經)의 글귀가 생각이 난다. 천 년 동안 깜깜했던 동굴도 등불을 밝히면 어둠은 즉시 사라지고 사방천지가 환하게 밝아온다. 칠흑같이 어두운 겨울밤도 동산에 아침 해가 떠오르면 어둠은 물러가고, 수많은 생명들이 그 밝은 빛에 기지개를 켜고 일어난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늪과 같은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도, 어둠이 짙으면 새벽이 오듯 희망의 등불을 밝히면, IMF 외환위기를 극복했듯이 금방 훌훌 털고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그 등불을 드는 손에는 반드시 지혜와 자비심이 필요하다. 그래서 지혜를 간직한 등불은 만 년의 어리석음을 물리친다고 했다.
얼마 전 인천에서 춤 명상을 하는 사람들이 템플스테이를 하러 왔다. 음악이나 마음에 몸을 맡겨 자연스러운 흐름을 따라가게 하는, 일정한 형식 없는 춤을 추는 이들이었다. 고요하게 춤을 추기도 하지만 격렬하거나 경쾌하게 춤을 추어, 몸에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 마음의 온갖 고민을 비워낸다고 했다. 그렇게 하면 마음에 고요가 찾아오기 때문이란다.
그들의 예술관에 빗대어 나는 몇 마디 보탰다.
“첫 번째는 욕심을 버리면 고요하고 평화로운 춤이 나온다. 더 멋진 춤을 추려다 보면 동작과 생각이 복잡해져서 결국은 고요한 마음보다는 불편한 마음이 더 커진다. 두 번째는 춤의 형식이나 과거의 경험, 지식과 정보들을 버려야 행복한 춤이 나온다. 선생님의 춤이나 춤의 형식을 좇아 비교한다면 늘 불만족이 쌓여 남이나 환경을 탓하기 마련이다. 세 번째는 남에게 잘 보이려는 마음을 버리면 자유로운 춤이 나온다. 나의 춤이나 행동을 자신보다는 타인을 통하여 확인하고자 한다. 그리고 예전의 춤에 머무는 생각을 가진다면 얽매여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모두 이 귀하고 아름다운 세상에서 가장 완성되고 멋진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이 뭐냐고 묻는다. 나와 인연 있는 모든 이들과 함께 평화로운 삶, 행복한 삶,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는 삶과는 반대로 행동하여 어려움에 처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평화로움을 누리기 위하여 스펙을 쌓고, 재력을 확보하고, 높은 지위를 좇고, 집의 울타리를 높이고 집을 짓는다. 결국 그 울타리 안에 갇히어 불면증과 우울증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행복을 누리기 위해, 눈과 귀와 코와 혀와 피부를 만족시키기 위해 과학적 도구를 이용하고 온갖 방법의 욕망을 좇다가 허무와 좌절을 만나기 쉽다. 자유로움을 누리기 위하여 현재의 일과 삶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치고, 휴일이나 먼 미래에 대한 갈증만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밖의 조건과 밖으로 향하는 마음에서는 결코 만족스러운 지혜를 찾기가 어렵다. 대립적 사고와 욕망을 꿈꾸는 문화로는 올바른 사회를 구현하기는 힘들다. 이미 우리 스스로 무한하고 창조적인 힘을 지니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 세대는 긴 인류 역사 속에서 가장 편리하고 아름다운 문화를 만들어낸 손과 마음들을 간직하고 있다. 그것은 매 순간 깨어있는 지혜로움, 그리고 ‘나’에 갇히지 않고 함께 서로 사랑하고 아끼면서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자비심을 바탕으로 한다.
혜능 선사는, 우리가 본래 가지고 있는 지혜는 번뇌가 없는 무념(無念)을 머리로 삼고, 고정된 생각이 없는 무상(無相)을 본체로 삼고, 머무름이 없는 무주(無住)를 기본으로 삼는다고 하였다. 무념은 평화로움을 만들어내고, 무상은 행복함을 만들어내고, 무주는 자유로움을 만들어 낸다.
민주주의는 평화롭고 행복하고 자유로운 춤을 추며 사는 사회를 의미한다. 대립이 없는 평등한 마음이 필요하고, 과거가 아닌 오늘의 삶을 존중하는 마음이 필요하며, ‘나’가 아닌 ‘우리’라는 화합의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 지금 세상 사람들이 밝힌 가장 가녀린 촛불은, 과거로 인한 옳고 그름을 시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미래를 밝히는 큰 지혜의 등불이 될 것이다.
조선일보 에세이 2016. 12.6 금강스님
서울에서 시작된 촛불집회가 이제는 땅끝마을 해남까지도 이어져 주말마다 촛불을 든 지역민들이 광장에 모이고 있다.
한 등불이 능히 천년의 어둠을 없애고, 한 지혜가 능히 만년의 어리석음을 없앤다(一燈能除千年暗일등능제천년암 一智能滅萬年愚일지능멸만년우)라는 『육조단경』(六祖壇經)의 글귀가 생각이 난다. 천 년 동안 깜깜했던 동굴도 등불을 밝히면 어둠은 즉시 사라지고 사방천지가 환하게 밝아온다. 칠흑같이 어두운 겨울밤도 동산에 아침 해가 떠오르면 어둠은 물러가고, 수많은 생명들이 그 밝은 빛에 기지개를 켜고 일어난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늪과 같은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도, 어둠이 짙으면 새벽이 오듯 희망의 등불을 밝히면, IMF 외환위기를 극복했듯이 금방 훌훌 털고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그 등불을 드는 손에는 반드시 지혜와 자비심이 필요하다. 그래서 지혜를 간직한 등불은 만 년의 어리석음을 물리친다고 했다.
얼마 전 인천에서 춤 명상을 하는 사람들이 템플스테이를 하러 왔다. 음악이나 마음에 몸을 맡겨 자연스러운 흐름을 따라가게 하는, 일정한 형식 없는 춤을 추는 이들이었다. 고요하게 춤을 추기도 하지만 격렬하거나 경쾌하게 춤을 추어, 몸에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 마음의 온갖 고민을 비워낸다고 했다. 그렇게 하면 마음에 고요가 찾아오기 때문이란다.
그들의 예술관에 빗대어 나는 몇 마디 보탰다.
“첫 번째는 욕심을 버리면 고요하고 평화로운 춤이 나온다. 더 멋진 춤을 추려다 보면 동작과 생각이 복잡해져서 결국은 고요한 마음보다는 불편한 마음이 더 커진다. 두 번째는 춤의 형식이나 과거의 경험, 지식과 정보들을 버려야 행복한 춤이 나온다. 선생님의 춤이나 춤의 형식을 좇아 비교한다면 늘 불만족이 쌓여 남이나 환경을 탓하기 마련이다. 세 번째는 남에게 잘 보이려는 마음을 버리면 자유로운 춤이 나온다. 나의 춤이나 행동을 자신보다는 타인을 통하여 확인하고자 한다. 그리고 예전의 춤에 머무는 생각을 가진다면 얽매여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모두 이 귀하고 아름다운 세상에서 가장 완성되고 멋진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이 뭐냐고 묻는다. 나와 인연 있는 모든 이들과 함께 평화로운 삶, 행복한 삶,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는 삶과는 반대로 행동하여 어려움에 처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평화로움을 누리기 위하여 스펙을 쌓고, 재력을 확보하고, 높은 지위를 좇고, 집의 울타리를 높이고 집을 짓는다. 결국 그 울타리 안에 갇히어 불면증과 우울증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행복을 누리기 위해, 눈과 귀와 코와 혀와 피부를 만족시키기 위해 과학적 도구를 이용하고 온갖 방법의 욕망을 좇다가 허무와 좌절을 만나기 쉽다. 자유로움을 누리기 위하여 현재의 일과 삶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치고, 휴일이나 먼 미래에 대한 갈증만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밖의 조건과 밖으로 향하는 마음에서는 결코 만족스러운 지혜를 찾기가 어렵다. 대립적 사고와 욕망을 꿈꾸는 문화로는 올바른 사회를 구현하기는 힘들다. 이미 우리 스스로 무한하고 창조적인 힘을 지니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 세대는 긴 인류 역사 속에서 가장 편리하고 아름다운 문화를 만들어낸 손과 마음들을 간직하고 있다. 그것은 매 순간 깨어있는 지혜로움, 그리고 ‘나’에 갇히지 않고 함께 서로 사랑하고 아끼면서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자비심을 바탕으로 한다.
혜능 선사는, 우리가 본래 가지고 있는 지혜는 번뇌가 없는 무념(無念)을 머리로 삼고, 고정된 생각이 없는 무상(無相)을 본체로 삼고, 머무름이 없는 무주(無住)를 기본으로 삼는다고 하였다. 무념은 평화로움을 만들어내고, 무상은 행복함을 만들어내고, 무주는 자유로움을 만들어 낸다.
민주주의는 평화롭고 행복하고 자유로운 춤을 추며 사는 사회를 의미한다. 대립이 없는 평등한 마음이 필요하고, 과거가 아닌 오늘의 삶을 존중하는 마음이 필요하며, ‘나’가 아닌 ‘우리’라는 화합의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 지금 세상 사람들이 밝힌 가장 가녀린 촛불은, 과거로 인한 옳고 그름을 시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미래를 밝히는 큰 지혜의 등불이 될 것이다.